박철, 한지 탐구의 歷程 - 서성록 (미술평론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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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한지 탐구의 歷程

 

앙상블의 탄생

박철은 멍석을 한지로 떠내어 그것의 텍스츄어에 초점을 맞춘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런 작업이 나오게 된 계기는 1980년대 중반 경상북도 임화댐 수몰 지구를 방문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댐 공사가 시작되자 그곳의 거주민들은 오랜 세월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거기에는 폐가만 남겨지게 되었다. 우리의 문화유산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온 박철이 임화 댐 수몰지역을 보면서 우리의 전통생활용품들이 사라져가는 안타까움을 갖게 되었고, 그것을 되살릴 방법들을 고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을 찾을수록 그는 점차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그는 수몰 지역에 대한 남다른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미 사람들이 떠나가 버린 텅 비어 있는 폐허의 고가와, 영겁의 서글픈 얼굴을 부끄럽게 드러내버린 창문에서 오는 고독감과 오랜 시간의 연속성을 이제 그 단절의 현실 앞에서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될 허무의 무상함을 느낀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작업은 단순한 향토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개발로 인해 수장되어버린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으며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안동 근교의 댐건설로 수몰 직전에 있던 고옥 마을의 폐허에서 와당조각, 농기구, 멍석, 창틀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착안된 작품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그것들을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암시하는 상징물로 환치시켰다. 고옥 창틀이나 멍석 등은 이제는 사라져가는 우리의 옛것을 환기시키는 유물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작가는 전래의 닥종이와 전통 생활가구 내지 기물과의 조합으로 점차 발전시켰는데 박철에게 한지는 서민적 성정(性情)을 품고 있는 매재로서, 즉 한지에 겨레의 성정이 고이 간직되어 있다고 여기고, 30년간 한지작업에 매진하는 집념을 보여왔다. 한지에 대한 사랑은 <한지의 물성성과 가변성전>(토탈미술관,1991),<한지-조형전,해석전>(워커힐미술관, 1993-98),<한지 어울림전>(한지테마파크, 2012-2015), <하얀 울림 - 한지의 정서와 현대미술>(뮤지엄산, 2015)같은 주요 기획적의 참여와 한지 작가들의 구심점인 <한국 한지작가협회전>(1990-2001)의 참여로 이어진다. 그가 한국한지작가협회의 회장을 맡아 협회를 이끈 것도 그의 유별난 한지 사랑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박철의 경우 한지는 작품에서 재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 자체의 섬유질과 색상을 뚜렷이 드러낼 뿐만 아니라 고가(古家)의 문짝과 와당, 떡살, 멍석 등을 떠받쳐주고, 몰딩에 찍힌 모양을 묵묵히 받아내는 작품의 버팀목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음각의 이미지를 양각으로 변화시키고 형상의 산파역할을 하는 것 또한 닥종이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된 이미지는 단순한 복고 취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창틀과 창살이 지닌 기하학적 형태, 멍석의 반복무늬에서 느낄 수 있는 세련된 감각, 그리고 한지 자체가 지닌 은은하고 담백한 표정과 고색창연(古色蒼然)한 느낌이 살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한지의 텍스추어는 부조적으로 처리된 떡살, 멍석의 형체와 함께 우리의 문화적, 정신적 숨결과 잇대어지면서 작가의 말대로 우리의 것으로 세계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통의 재창조

근래의 작품은 한층 완성도를 높이면서 예전보다 단색의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화면의 표면감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표면감은 한지의 물성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 표면의 균질성은 씨줄과 날줄로 구성된 멍석의 짜임에서 오는 것으로 주물에서 캐스팅된 것이다.

멍석이란 농경을 주로 하는 촌락사회의 형성과 더불어 발달해온 것으로 한국인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것이다. 멍석은 짚을 엮어 만든 것으로 주로 곡식을 널어 말리는 데에 쓰거나 큰일이 있을 때 마당에 깔아 손님을 맞이하는 데에 사용하곤 했다. 작가가 생활의 도구에 쓰였던 멍석에 주목한 것은 그것이 지닌 무형의 가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멍석은 사회의 발달과 함께 쇠퇴해갔고 우리의 생활권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작가는 그것의 조형성에 주목함으로서 한국인과 오랜 세월 함께 지내온 멍석을 재인식하고자 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예술의 경지까지 승화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박철의 기발한 상상력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시골의 농가 혹은 민예품 가게에서나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몰드에서 떠낸 이미지 위에 한지를 바르고 두드려 이것이 완전히 마른 후 채색을 더함으로써 독특한 텍스추어를 만들어냈다. 작업과정은 이전과 마찬가지이지만 그간 형상을 근간으로 하던 데서 평면과 물질성으로의 이동이 포착된다. 지금까지 보여온 작품 기조는 유지하고 있지만 물질성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섣불리 평면으로의 회귀로 단정하기는 조심스럽다. 잔잔한 표면위에는 고서의 이미지와 떡살의 이미지가 간간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여전히 옛 것의 현대화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찍이 실학자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옛 것을 배우고 본받되, 현재의 상황에 알맞게 적적하게 변화시키는 것을 주장한 바 있다. 그가 주장한 선변’(善變)은 옛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모방이나 답습이 아니고 옛 것을 취하되 작가가 사는 현실 또는 현재라는 시제에 알맞게 고쳐 사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박철의 작품을 빛내주는 것, 그것은 아마도 옛 것의 참맛을 되살려내되 오늘의 미감에 걸맞게 소화해 내는데 있지 않나 싶다. 그가 택한 소재는 평범하지만 전통의 재창조를 훌륭하게 이루어가고 있다. 또한 한지의 매재적 특성을 살려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것 등은 그가 이 문제를 오랫동안 골똘히 연구해왔음을 실증한다. 참고로 한지작업은 단색화를 맹아(萌芽)시킨 미술로 우리 화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영역이자 그럼에도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차세대 미술로 점쳐진다.

작가로서의 역정(歷程)은 개인전 47회라는 경력에 오롯이 나타나 있다. 이중에는 슈투트가르트, 밴쿠버, 암스테르담, 파리 등의 해외 갤러리, 이번에 개인전을 갖는 줄리아나 갤러리를 비롯하여 영은 미술관, 포스코 미술관, 워커힐미술관, 선화랑에서의 개인전 등이 포함되어 있다. 거의 모든 개인전에서 그는 한지작품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것은 그의 한지작업에 대한 의욕이 남다르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그가 한지회화의 중심 작가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칠 줄 모르는 창작의 열정과 한지에 관한 각별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화업 30년의 외길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의 작업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나온다. 작가는 석고나 시멘트와 같은 경질의 재료로 몰딩을 만들고 그 위에 창틀이나 멍석, 바이올린을 올려 원하는 형태를 음각으로 떠낸 다음 그 위에 한지나 색종이를 2,30 여회를 덧발라가며 양각의 형태를 얻어낸다. 한 점의 한지 부조작품이 나오는 과정은 까다롭다 못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 작업을 고수하는 것은 한 점의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의 희열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근성 있는 화공(畵工)’의 모습을 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한지 탐구의 역정으로 화업 30년을 장식한 그의 예술의 길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서성록 (미술평론가,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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